구조조정의 계절, 이제는 자본의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의 계절, 이제는 자본의 구조조정이다
[이슈해설] 서민 돌반지 모으기 아닌 대주주 금송아지 모으기로 경제 난국 넘어야
2008-11-18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늦은 한파가 시작되었다. 계절만 겨울로 들어선 것이 아니다. 일하는 직장에서 실직의 한파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구조조정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11년 전 환란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실물경제 ‘꽁꽁’, 고용대란의 계절이 오다

세계 실물경기 침체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이미 감원과 해고의 충격이 거세게 시작되었다. 공식적인 실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매월 20만 명 이상의 고용감소가 진행되어서 올해에만 100만이 넘는 실업자가 새로 생겼다.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은 실직자가 10개월 동안 14만 8,000명에 이르렀고, 제조업에서도 15만 명이 감원되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자칫 수백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회생에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월가와 미국 제조업의 구조조정 한파는 거의 시차도 없이 국내로 직수입되고 있다. 시공능력 41위인 신성건설이 신청한 법정관리를 신호탄으로 건설업계의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저축은행을 필두로 금융업계의 감원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세계적인 내구재 소비 위축의 여파로 미국 본사가 생사기로에 처한 GM대우의 감산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잔업과 특근 축소에 이어 다음은 구조조정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자나 반도체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는 최근까지 초호황을 누려왔던 조선업마저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이라는 안이한 발상

이미 올해 초부터 임시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추가 일자리 증가가 2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다시 9만 명으로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올 겨울을 분기점으로, 곧 정규직 일자리도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고용대책이라고 해서 현행 2년의 비정규직 기간을 연장하자는 주장도 들린다. 어이 없는 주장이다. 지금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자영업, 청년, 정규직을 포함해 국민경제의 고용 틀 전부가 흔들리고 있는 말하자면 고용대란 국면이다. 안이하게 비정규직의 고용 편리성을 조금 늘려서 해결될 시국이 아니다. 기업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외환위기 아니라면서 구조조정은 왜 꺼내나

‘구조조정’은 업계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정부쪽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에 외환위기도, 금융위기도 없다고 수차례 확언을 해왔던 정부가 어째서 외환위기 정도가 와야만 있을 법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얘기하고 있는가. 사실 위기는 이미 외환과 금융시장에서, 수출시장에서, 내수시장에서, 그리고 고용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뚜렷한 해결의 돌파구가 없기 때문에 한두 해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 사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과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세계경제가 호황세를 누리던 시기였다. 미국도 신경제 활황의 정점을 향해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수출을 통해 한두 해만에 외형적으로나마 환란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은 물론, 10퍼센트를 넘는 고성장을 구가하던 중국까지도 성장 하락세가 점쳐지고 있다. 전 세계의 소비, 특히 우리가 주력 수출품으로 삼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 같은 내구재 소비 축소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도 2009년 수출증가율을 3퍼센트 내외로 보고 있다. 2000년 평균의 1/5도 되지 못하는 극적인 추락이다.

유일한 돌파구였던 수출마저 봉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 결국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내수를 살리는 것 이외에 선택지는 없다. 토목 건설 같은 내수가 아니라 국민의 구매력을 높여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살아나 경기가 회복되는 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고용이 있다. 고용이 늘어야 소득이 올라가고 구매력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조조정된 상황, 뭘 얼마나 더 하려고

하지만 고용은 오래 전부터 이미 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카드 대란 여파로 늘어나는 일할 사람(경제활동가능인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고용은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었다. 여기에 올해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취업자 수는 이미 내부적으로 소리 없는 인력 구조조정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전년대비 취업자 증가수가 20만 명을 밑도는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다. 늘어난 경제활동가능인구(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대로 2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던 시기는 2003년 카드 대란 시기와 지금 뿐이다. 그나마 카드대란 시기는 그 전해인 2002년 과잉 신용팽창으로 취업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뒤의 반작용 측면도 있고, 바로 이듬해부터는 회복세를 보였다.

[그림1] 2001년 이후 취업자수 증가 추이(천명)

* 자료: 통계청

그러나 올해의 경우는 2005년 이후 3년 동안 그나마 유지되어온 28만여 명의 취업자 증가 추세도 꺾여서 아예 1/3수준인 9만 명 수준으로 추락했다. 현재의 추세를 볼 때, 전년 대비 취업자가 조만간 마이너스 증가로 돌아서고 취업자 절대규모가 감소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

원래 저조했던 고용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입한다면 그 충격은 외환위기를 사실상 넘어서게 될 것이다. 정부가 내년 목표로 잡은 20만 명 고용창출이 어림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마불사’, 은행도 대기업도 아닌 국민이어야

그렇다면 더 고용을 줄여 구조조정을 한다는 발상이 현재 우리 경제 실정에는 무모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나 재계에서는 대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유지될 것 아니냐는 이른바 대마불사 논리에 집착하는 듯하다. 국민경제에서 진정 불사해야 할 대마는 무엇인가. 은행도 수출 대기업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11년 전에도 대마불사의 논리에 따라 은행과 대기업을 살려주었다. 그러나 대마(대기업, 은행)가 기사회생한 후에 국민에게 일자리를 다시 준 것은 아니었다. 그 탓에 환란으로 일자리를 잃은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후 비정규직을 전전했고, 퇴직금으로 대출을 받아 직장인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영업에 주 50시간 이상을 바쳐야 했다. 대기업에서 쏟아진 수많은 인력들을 채산성도 좋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떠안아야 했다.

1996년에서 2006년 10년 동안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20만 명이 늘어난 반면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78만 명이 줄어들었다. 11년 전 환란으로 대기업이 인력을 대폭 줄인 후에 지금까지 거의 고용을 늘리지 않았음을 통계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림2] 기업규모별 고용정도 추이(사업체 기준, 천명)

* 자료: 통계청

실패한 인력 구조조정 다시 반복하지 말자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은 정확히 말해서 인력 구조조정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더 이상 구조조정을 해야할 인력도 없다. 어려운 시기 인력 구조조정을 감내했다고 해서 시절이 좋아져 남긴 수익을 공유한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인력 구조조정으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이미 실패했다. 실패한 방법을 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줄곧 강조되어온 것은 고용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이었다. 특히 은행들의 수익 창출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 수익은 고용을 줄여서 얻은 수익이었고 미래의 투자를 포기한 대신에 만들어진 단기수익에 불과했다. 개인들의 소득도 마찬가지다. 일해서 번 노동소득을 늘리는 대신에 손실 가능성이 높은 각종 위험 펀드에 가입하여 투기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일시적인 소득증대의 착시현상을 심어주었다.

인력을 줄이고 미래의 장기 수익을 포기하며 얻은 기업의 단기 수익, 지금의 노동 소득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의 소득을 담보 잡아 부채를 끌어 쓴 소비와 구매력이 결국에는 거품으로, 파산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 발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선진국이나 한국에서나 경제위기 극복의 실마리는 모두 정부가 쥐고 있다. 이미 시장의 해결능력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을 재원으로 재정지출을 가장 효율적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할 시기다. 지금은 정부가 대마불사 논리에 사로잡혀 대기업과 금융기업 자금투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하고 국민의 구매력이 커질 수 있는 곳에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 나아가 고용에 가장 직접 영향을 주는 중소기업 회생을 위해 강도 높은 공적자금 투입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대기업 주주들에게는 스스로 자본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직접 지분매입을 하는 등 자본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국민의 노후를 담보한 국민연금이 굳이 쓰여야 한다면, 막아봐야 별 효과도 없는 주가 떠받치는데 쓸 것이 아니라 자본의 구조조정을 하는데 쓰여야 한다. 정부가 보증할 일이 있다면 고용확대 위험에 대한 보증을 해야 한다.

11년 전에는 금모으기 운동을 벌여 외환위기 탈출에 힘을 보탠 적이 있다. 이번에는 서민들의 ‘돌반지 금모으기’가 아니라 대주주들이 가진 ‘금송아지 모으기’ 운동을 요구해 경제 위기의 난국을 돌파해 보자.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http://www.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081118234702411&pcd=EA01

GM의 위기, 제조업과 금융을 맞바꾼 대가

GM의 위기, 제조업과 금융을 맞바꾼 대가
제조업 타격과 구조조정, 남의 일이 아니다
2008-11-17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GM의 위기, 제조업과 금융을 맞바꾼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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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두려운 실물경기 침체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이 아직 실마리조차 잡히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위기보다 더 위협적인 실물경기 침체가 오리라던 예상이 눈앞의 현실로 닥쳐오기 시작했다.

실물경기 침체가 다시 금융위기를 증폭시켜

베스트바이(Best Buy)에 이어 미국 2위의 가전 유통업체인 60년 역사의 서킷시티(Circuit City)가 2008년 11월 10일 3/4분기 손실 약 2억 4,000만 달러를 내면서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국제우편과 화물배송 회사인 DHL 역시 미국 법인의 감원규모가 1만 5,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금융가에서는 이미 11만 명이 해고되는 등 미국 내 기업들에 구조조정과 감원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2008년 3/4분기부터 미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비지출도 급격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3/4분기 소비는 이미 3.1퍼센트 감소했고, 4/4분기에는 2.9퍼센트 감소, 2009년 1/4분기에는 1.3퍼센트 감소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대전이후 최대의 소비 침체라고 할 만하다. 미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자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인 미국의 소비가 본격적으로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소비감소는 미국 기업의 감산과 구조조정, 그리고 실업자 증가로 이어진다. 2008년 10월 실업률은 6.5퍼센트로 14년만의 최고치이며 이로써 공식적인 실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09년 실업률을 8퍼센트 이상으로 보고 있다. 2008년 1~10월 사이에 줄어든 일자리만 해도 120만 개에 이르는데, 2008년 9월 비농업 부문 고용 감소는 28만 4,000명이었고 10월은 24만 명이었다.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되기 시작한 2007년 12월 이후 연속되는 감소세다. 그러다 보니 2008년 11월 현재 1주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실직자는 25년 만에 최대로 389만 7,000명에 달했다.

‘미국 금융위기 → 유동성 감소와 자금조달 위기 → 소비 위축 → 기업의 감산과 구조조정 → 실업 확대 → 소비위축’의 악순환구조를 따라 미국 경제가 불황의 기나긴 터널로 진입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 같은 실물경기 침체는 필연적으로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기업 실적 악화는 다시금 주식시장 폭락과 금융회사들의 자금회수능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금융위기를 증폭시키게 된다.

미국 실물경기가 어느 수준 위기까지 치달을 것인지에 대한 시금석이 바로 자동차 3사가 몰려있는 디트로이트의 경제이며, 그 중심에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이라고 할 GM이 있다. 지금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GM의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선거사상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 오바마 체제가 2009년 1월 20일 정상적으로 출범할지의 여부도 GM을 중심으로 한 미국 자동차 산업의 회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초 최대 93달러를 넘나들었던 GM의 주가는 2008년 2월까지만 해도 28달러 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실물경기 침체가 확산되기 시작한 11월에 접어들자, GM의 주가는 11월 11일자 종가 기준으로 무려 2.92달러까지 무너져 내렸다. 10개월이 채 안 된 기간 동안 1/10토막이 났다.

GM은 제조업의 리먼 브라더스가 될 것인가.

주가 2.92달러의 시점에서 GM의 시가 총액을 계산해보면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 남짓된다. 이는 시가 총액이 68조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주식으로 GM을 68개나 살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GM을 더욱 황당하게 만드는 사실은 11월 10일 독일 은행 도이체방크(DeutscheBank)가 GM의 ‘목표 주가’를 제로(0) 달러로 제시하면서 투자자에게 매도할 것을 주문했으며, 비슷한 시각 영국 금융기관 바클레이즈(Barclays)도 GM의 목표 주가를 1달러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GM 주식은 조만간 휴지조각이 될 것이니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한 셈이다.

그런데 GM의 주가가 추락한 것은 단순히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로 주식시장이 폭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내구재를 중심으로 해서 이미 위축되기 시작한 미국의 실물경기 침체, 특히 소비 위축을 반영하고 있다.

2008년 들어 미국 내 자동차 판매는 이미 감소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의 판매 감소가 두드러진다. 2008년 1월에서 10월 사이 미국 자동차 3사의 미국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5퍼센트나 줄어들었는데 이는 일본 자동차의 8퍼센트, 한국 자동차의 1.9퍼센트 감소보다 훨씬 큰 폭이었다. 더욱이 소비위축과 실물경기 침체가 두드러진 10월 GM의 판매는 45퍼센트 감소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의 다른 자동차 회사는 물론이고 일본이나 한국의 자동차 판매 부진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다 보니 GM의 경영실적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최근 수년 동안 이어온 적자 행진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GM은 2008년 들어 1/4분기부터 3/4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보고 있는 중이며, 3/4분기 손실만 해도 25억 3,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즉, ‘미국 금융위기 → 실물경기 침체 → 소비위축 → 내구재 소비위축 → 자동차 구입 감소 → GM의 손실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GM은 당장 운영할 수 있는 유동자금이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2008년 11월 현재 현금 운영자금이 약 162억 달러로 알려졌다. 운영자금이 한 달에 거의 20억 달러씩 줄어들고 있는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정부 지원이 없다면 2009년 상반기에는 결국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 릭 왜고너 GM회장이 “GM을 파산하게 놔두면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와 같은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연방정부의 긴급 구제 금융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전 세계로 실물경기 침체가 확산되고 있는 국면에서 매출 감소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나 GM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역시 2008년 10월까지 자동차 판매량이 310만 대로, 전년 대비 10만 대가 줄어들었으며 BMW를 비롯하여 주요 자동차 산업들이 조만간 공장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다고 알려진 일본 자동차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요타와 닛산 등 8개 완성차 업체의 감원 규모가 2008년 11월 초 현재 9,700명에 달했고 2008년 안에 1만여 명에 이를 예정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 행진에 현금 보유고까지 말라버린 GM의 생존은 그 어느 자동차 회사보다도 절박한 상황이다. 만약 GM이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서 지난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와 마찬가지의 운명에 내몰리면 그 파장은 얼마나 될까? 미국 자동차연구센터(CAR)에 따르면 자동차 3사 가운데 단 한군데만 파산해도 당해 실업자가 250만 명, 2011년까지 추가 실업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 여파로 이미 1,000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미국 고용상황에 더욱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설비과잉과 부채에 의한 가수요 창출

그런데 GM이 누구인가? 2007년 도요타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76년 동안 세계 제1위의 자리를 지켜왔으며 41개국에 지사를 두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통했던 회사가 아닌가? GM은 한 해 1,000만 대가 넘는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고 있으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13.3퍼센트에 해당하는 940만 대를 판매하며, 한 해 1,7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왔다. GM이 거느리고 있는 전 세계 지사에 고용된 인원은 25만 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런 GM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여기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해왔던 자동차 산업 환경과 이에 대한 GM의 대응방식에 원인이 있다. 사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이미 설비과잉으로 오랫동안 문제가 누적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2007년 현재 약 1,7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설비가 과잉되어 있다. 설비과잉은 자동차 회사들의 자산대비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1970년대에는 약 20퍼센트까지 달했던 자동차회사들의 경상이익률은 현재 5~7퍼센트대로 하락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자동차회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거대 자동차회사들의 경쟁은 시장이 포화되어가는 미국, 유럽,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신흥국에서도 벌어졌다. 이는 해당 국가에의 공장증설을 필요로 한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는 자동차 설비가 과잉되어 있으나, 계속해서 생산능력을 확대해가는 구조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GM을 비롯한 미국의 자동차 회사는 적극적인 외주화, 분사화와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을 통해 경쟁을 돌파하는 전략을 써 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늘지 않는 자동차 수요를 확장하기 위해 자동차 할부금융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른바 ‘부채’에 의한 가수요를 창출해왔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중산층은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수요를 일정하게 증가해 왔는데 여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미국의 가계는 차입을 통해 부동산을 구매해 왔던 것처럼 자동차 구매 역시 차입에 의존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GM의 점유율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50퍼센트에 육박하여 반독점법 대상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고, 금융위기를 겪기 시작한 2007년과 2008년을 경과하면서 매우 급격하게 하락했다. 2008년 현재 미국 자동차 3사의 미국 점유율은 48.3퍼센트인 반면 일본 자동차는 39.7퍼센트로 올라섰다.

이 같은 점유율 하락은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2005년 이후 GM의 적자폭은 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2007년 387억 달러 적자(최종 조정된 손실은 230억 달러)에 이어 2008년 9월까지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미국과 세계의 실물경기 침체와 소비위축까지 본격화되면서 절대적인 시장 축소가 진행되자 GM을 포함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금융을 선택한 대가

그렇다면 왜 미국의 자동차 3사 중에서도 특히 GM의 쇠퇴가 유난히 두드러질까?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한 ‘경제의 금융화’ 현상이 GM에게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GM의 쇠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2000년 이후에 GM이 거둔 이익의 상당부분은 사실 자동차 판매가 아니라 GM의 금융자회사인 GMAC로부터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GM역시 여타의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금융회사를 사업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금융부문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금융회사가 다름 아닌 GMAC였다.

미국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6년까지만 해도 GMAC는 GM에게 약 22억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주면서 GM 자동차 부문의 손실을 메워주던 효자 기업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진 2007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2007년 GMAC가 낸 순손실은 23억 달러에 이르렀고 49퍼센트의 지분을 소유한 GM은 이 가운데 11억 달러의 손실을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들어서면서 GMAC의 손실은 더욱 증가하여 3/4분기에만 25억 2,000만 달러 손실을 기록한다. 이 가운데 모기지 관련 손실이 19억 달러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 GMAC 역시 2000년대 과열되었던 모기지 대출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GMAC의 모기지 관련 손실은 10월까지 총 91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GM이 10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GMAC의 자회사인 모기지 금융업체 레지덴셜캐피털(ResCap)은 부실 채권 증가로 생존 가능성 자체가 회의적이다.

GMAC의 위기는 GM에게 직접 재정손실을 가져다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GMAC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신규 할부 대출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다시 자동차 판매 자체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부진을 금융으로 메워왔던 GM이 이제 역으로 금융부문의 손실로 인해 GM 전체가 흔들리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경제의 금융화가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인 GM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들은 설비 투자 기간과 투자 회수기간이 비교적 긴 제조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회수기간이 짧고 한때 고수익이 보장되던 금융부문에 치중한 결과,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회생 가능성 자체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강성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무리한 복지혜택 요구가 회사 경영을 더욱 어렵게 했으며 의료보험과 연금혜택이 부담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GM 몰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미약하다.

미국 정부는 GM을 살려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GM의 운명, 나아가 디트로이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0월 한 때 크라이슬러 지분 80.1퍼센트를 보유한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CerberusCapitalManagement)가 자신이 보유한 GMAC 지분 51퍼센트를 지렛대로 하여 GM과 클라이슬러 합병을 주선했지만, GM의 10월 손실이 커지면서 이마저도 가능성이 희박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GM의 회생 가능성은 좁아지고 있다.

또한 ‘에너지 고효율 자동차 개발’ 명목으로 의회에서 통과된 250억 달러 외에 100억 달러 긴급 구제요청을 한 GM의 요구를 부시행정부가 거절한 상태다. 그런데 부시 정부가 월가를 살려내기에만 여념이 없던 것과 달리 미국 민주당과 새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자동차 산업을 살려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주목이 된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어려움들로 인해 오바마 당선자나 미국 민주당이 나선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첫째,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절대적인 경쟁력 약화가 한참 진행된 상태에 있다. 둘째, GM은 이미 상당한 적자를 안고 있어 어지간한 자금 투입으로는 몇 개월도 생존하기 쉽지 않다. 셋째, 아직 금융부문의 구제 금융을 위한 재정지출은 물론,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회복을 위한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넷째, 결정적으로 이미 과잉된 자동차 시장 국면에 더하여 절대적인 내구재 소비위축과 시장축소가 시작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서 월가에서도 GM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기 보다 차라리 파산시키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아크만은 “GM은 부채가 너무 많고 계약 조건들도 경제적이지 않아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어 왔다”면서 “GM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된 파산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실업 여파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월가다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정부가 미국 자동차 3사(GM, 포드, 클라이슬러)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250억 달러의 긴급 구제 금융을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가운데 일부를 돌려 지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자동차업계 앞에 놓인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먼저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실시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지를 가진 오바마 당선자의 취임식인 2009년 1월 20일까지 GM이 견뎌내기에는 힘든 상황에서 의회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의회조차 상황을 풀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GM의 위기, 한국경제와 무관하지 않아

그렇다면 GM이 처한 절대 절명의 위기는 미국 경제만의 위기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은 더욱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2002년 GM이 인수한 한국 자동차 회사인 GM대우가 있기 때문이다. GM대우는 국내시장 보다는 GM본사를 통한 수출이 전체 판매의 8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다. 때문에 GM의 운명은 곧 GM대우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GM대우는 토스카와 윈스톰을 생산하는 부평 2공장은 내년 3월까지 조업일수 기준 총 45일간 조업을 중지할 예정이고, 군산공장은 31일,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은 각각 10일 동안 조업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미국 GM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여하에 따라 더욱 악화될 여지도 있다. 한국 제조업이 세계 실물경기 침체의 타격을 직접 받게 되는 순간이다.

GM 대우 외에 외국계 자동차 업체인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 자동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고 르노삼성도 이달 중 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받는 방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도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구조조정’,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경영문제가 아니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그 어떤 단어보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환위기 때처럼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다가는 경제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된 상황에서 대폭적인 구조조정은 경제가 다시 기대고 일어날 언덕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에서도 구조조정은 단지 해당 기업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차원을 넘어서 경제의 회생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손쉬운 답으로서 구조 조정을 쉽게 거론해서는 안 된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http://www.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081117105409073&pcd=EA01

내수기반 부실로 실물경제 휘청, 유례없는 생활고 닥칠 것

내수기반 부실로 실물경제 휘청, 유례없는 생활고 닥칠 것
글로벌 금융위기 속의 한국경제 현실과 전망(2)
2008-11-14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글로벌 금융위기 속의 한국경제 현실과 전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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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1월 7일 열린 민주노총 정책토론회 ’한국경제의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 에서 발표했던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3. 내수기반 없는 수출경제의 취약성 드러낸 실물경제

1) 어두운 2009년 경제전망

2008년 경제 성장률이 1/4분기 5.8퍼센트 → 2/4분기 4.8퍼센트 → 3/4분기 3.9퍼센트 등 분기마다 거의 1퍼센트씩 떨어지면서 한국의 실물경제도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IMF가 2008년 예상치를 4.1퍼센트로 전망하는 등 대부분의 기관들은 2008년 한국경제 성장치를 3.5~4.5퍼센트로 전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전망치는 더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수정한 2009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2.2퍼센트로 2008년 3.7퍼센트보다 무려 1.5퍼센트나 주저앉았다. 특히 미국 -0.7퍼센트, 유로 존 -0.5퍼센트, 일본 -0.2퍼센트, 영국 -1.3퍼센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상했다. 이는 세계 경제가 빠른 속도로 침체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반영하여 2009년 한국경제 성장률도 4퍼센트 이상으로 보는 기관은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최대 3.9퍼센트에서 최하 1.1퍼센트로 내다보고 있으나 이마저도 앞으로 금융위기의 수습방향에 따라,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의 깊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2009년 상반기는 그 침체의 골이 가장 깊을 것으로 예상되며 침체의 장기 지속성 여부도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금융위기에 이어 본격적인 실물경제 침체가 향후 더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경제도 2008년 하반기부터 이미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시작된 수출둔화와 그 영향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실질적으로 수출이 성장을 주도하는 반면 내수는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2005년 기준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일본보다 2배 이상 높은 28.2퍼센트였다. 이는 10년 전인 1995년의 24.9퍼센트에 비해서도 3퍼센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수출이 수입을 유발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수출이 국내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 즉 내수연관효과 역시 줄어들고 있다. 2005년 기준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615로 10년 전의 0.698에 비해 낮아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돌아보면, IT버블 붕괴의 여파로 수출이 잠시 급락했다가, 다시 몇 년 뒤 신용카드 대란을 겪으면서 이번에는 내수가 심각히 위축되었다. 그런데 신용카드 대란 이후 민간소비가 아직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 발 금융위기가 터져 이미 국내 경기가 침체상태로 빠져들고 있으며 상반기까지 20퍼센트 이상의 고성장을 유지해왔던 수출마저 하반기에 들어 급격한 둔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통관 기준으로 2008년 10월까지 수출실적을 보면 전년 대비 21.3퍼센트의 수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2007년 증가율 13.7퍼센트를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경기침체가 가시화된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본격적인 침체로 확산되기 전의 상황인 것이다. 물론 그 조차도 수출금액이 아닌 수출물량 기준으로 보면 이미 8월부터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었으며 특히 자동차 수출물량은 7월부터 빠른 감소세를 띠었다.

국민의 소비로 견인되고 있는 미국경제의 경우 2008년 3/4분기의 소비지출 증가는 -3.1퍼센트로 후퇴하면서 경제성장률은 -0.3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나마 약 달러 덕택에 수출이 호조를 보인 탓이다. 이 영향으로 미국 자동차 판매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2008년 10월 미국시장에서의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수출 증가율은 각각 -31, -38퍼센트를 기록했다.(GM은 -45.1퍼센트, 도요타는 -23퍼센트)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 들어 한국의 대미 수출비중은 10~13퍼센트로 줄어들고 있어 수출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은 21~23퍼센트, EU 13~15퍼센트, 아세안이 9~11퍼센트로 오히려 대미 수출비중을 앞지르거나 따라잡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하반기 들어 중국경제도 본격적인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차이나쳉진국제신용평가(CCXI)는 3/4분기 경제성장률이 9.0퍼센트에 그친 중국의 2008년 경제성장률을 2007년의 11.4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9.4퍼센트로 내다봤으며 2009년에는 8.6퍼센트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이후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보다 더 추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중국의 이러한 경기침체가 향후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상할 수 있는 사례가 IT 수출 동향이다. 2008년 10월 한국의 IT산업 수출 규모는 122억 3,000만 달러로 전체적으로 전년 동월대비 6.4퍼센트가 감소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대중국 수출은 47억 4,000만 달러로 1퍼센트가 감소하는 데 그친 반면, 대EU 수출은 20억 8,000만 달러로 14.5퍼센트, 대일본 수출은 6억 2,000만 달러로 26.4퍼센트나 급감했다. 다시 말해 중국의 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순간 우리의 수출 규모는 더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2009년에 중국경제가 최대 8퍼센트 성장에 머물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려앉는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경제를 이끌던 수출의 둔화는 기정사실화 될 것이고 한자리수 증가율을 겨우 유지하게 될 전망이다. 세계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 내수의 뒷받침 없이는 한국경제의 동반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 둔화의 원인이 수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 저하가 아닌, 미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국의 자동차, IT와 같은 내구재의 절대적인 소비 위축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수출 증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11년 전 외환위기에서 한국이 그나마 비교적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외 지역의 경기 호조로 수출이 대폭 증가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자체적으로 불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수출이 아니라 내수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인다면 수출둔화는 외환시장 불안으로 치솟고 있는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도 부정적인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OECD 30개국 가운데 최근 경상수지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된 나라는 벨기에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008년 들어 10월까지의 누적 무역수지는 -134억 5,000만 달러였고 한해 전체로는 월평균 100억 달러 내외의 적자가 예상된다.

2008년 10월 들어 12억 2,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이는 수출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원유가격의 급락에 따른 수입증가율의 둔화 때문이다. 향후에도 수입증가율과 수출증가율의 둔화 속도에 따라 무역수지가 결정되겠지만 흑자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3) 중소기업에서 실체화될 실물경제의 타격

우리나라는 2008년 10월 현재까지 부도위험에 노출된 C&우방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경우처럼 굴지의 대형 은행이 도산한 사례도 없고, 과거 외환위기 시기처럼 대기업이 도산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그 위기가 중소기업, 자영업, 고용과 같은 경제구조의 하부에서부터 심화되어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97년 당시에는 한보, 기아와 같은 대기업의 중복 과잉투자로 인해 외환위기가 일어나 은행의 부실로 전파된 결과 대기업에 고용된 정규직 직장인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위기는 이미 중소기업, 자영업에서부터 누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들은 오랫동안 경영난과 생활고에 허덕여 오던 와중에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과 세계적 실물경기의 침체로 마지막 한계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치솟기 시작한 2008년 상반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것은 국내 고용의 87퍼센트를 담당하던 한국의 중소기업이었다. 이제껏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좀처럼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중소기업들이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와 “환헤지 상품 피해대책 촉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례다.

외환위기 이후 3~4퍼센트의 낮은 영업이익률과 대기업의 1/3 수준에 불과한 낮은 생산성으로 버텨오던 중소기업들은 한때 중국이나 동남아로 진출해 비용부담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중소기업 채산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납품가의 결정권을 손에 쥔 대기업들은 납품가 인상에 인색했고, 이른바 글로벌 아웃소싱을 추진하며 국내 중소기업과의 연관도마저 줄여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자금줄인 은행들은 이미 수익성 위주의 경영체제로 돌아서 중소기업 대출을 대폭 줄여온 터라 이들의 자금회전은 더욱 어려워진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2008년 6월 92.5퍼센트(전년 동월 대비)까지 폭등한 원자재 가격은 유가가 폭락하던 9월에도 여전히 59.1퍼센트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원자재가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는 납품가로는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가동률은 갈수록 떨어져서 2008년 9월 현재 가동률 8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는 중소 제조업체는 전체의 36.2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고 2008년 초부터 평균 가동률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해 6월부터는 70퍼센트 미만으로 추락했다.

2008년 상반기 원가상승 압박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아파트 분양원가 개념과 유사하게 원청업체인 대기업들이 원자재가 상승분을 납품가에 반영하도록 ‘납품가 연동제’를 법제화해달라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어렵다면 그 차선으로 각 산업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교섭권을 위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에 의한 자율교섭’ 원칙을 내세우며 납품가 연동제를 묵살해오다 중소기업들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이른바 ‘납품가 조정협의 의무제’라고 하는 변형안을 내놓았다. 2008년 정기국회에서 입법 예고된 이 법안은 중소기업이 납품가 조정을 신청할 경우 대기업이 협의에 응할 것을 의무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원-하청업체 간 교섭력 격차를 무시한 발상에 불과하다. 중소기업들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자재가 상승에 이어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바로 키코(KIKO, Knock In Knock Out)라는 파생상품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키코는 우량 수출기업들이 2007년 하반기 이후 극심한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은행(주로 외국계 은행)의 권유로 가입한 환헤지 상품이다. 그러나 2008년 들어 예상치 못한 환율 폭등으로 인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2008년 3/4분기 키코 손실액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성진지오텍이 10월 16일 공시한 바에 따르면, 3분기 통화옵션 평가 및 거래 손실 규모가 1,526억 원에 육박했다. 이는 자기자본의 95.02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3분기까지의 누적손실액(평가손실 포함)은 2,974억 원으로 시가총액 1,100억 원의 3배에 달할 정도다.

이미 2008년 6월 중소기업들은 은행들이 키코의 손실위험성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계약으로 제소했지만 공정위는 은행연합회 편을 들어주었다. 최근 120여 개 피해업체가 모여 씨티, SC제일은행, 신한, 외환은행 등 13개 은행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중소기업들이 2008년 상반기에 주로 원자재가 급등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감당해야 했다면 하반기부터는 여기에 금리 상승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더해졌다. 2008년 7월까지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5조 5,000억 원을 유지하다 8월에는 1조 8,000억 원, 9월에는 1조 9,000억 원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나마 금융위기가 고점에 올랐던 2008년 10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중은행에 중소기업 대출을 독촉한 뒤 다소 늘어난 것이 2조 6,000억 원이다.

중소기업의 절박한 자금 수요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자신들의 유동성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대출금의 회수를 검토할 시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협박도 통하지 않고 있다.

설사 대출을 받는다 해도 평균 7퍼센트 이상인 대출금리를 상환할 수 있는 여력조차 없는 것이 지금의 중소기업 상황이다. 순이자보상비율이 2005년 이후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은 중소기업들의 이자 상환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중소기업의 40퍼센트 가량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면 된다.

원자재가와 고금리의 부담 그리고 환헤지 상품 피해로 줄도산 위기에 선 중소기업들이 2008년 상반기까지 견디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이미 2008년 3/4분기 이후 본격화 되고 있는 국내 소비위축은 중소기업의 판매실적에도 점점 더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은 당장 고용에 미치는 충격파가 적지 않은 것은 물론, 나아가 은행의 대출부실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4) 이미 구조 조정된 자영업의 재구조조정

2008년 들어 가장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몰린 계층이 600만 자영업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상태나 영업활동 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상징하는 집단은 단연 비정규직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2008년에 접어들면서 부쩍 자영업, 특히 영세 자영업인들의 어려운 경제형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골목경제가 흔들린다’(쿠키뉴스 2008/8/6), ‘하루 12시간 일해 고작 3만원, 폐업생각 굴뚝’(경향신문 2008/8/4), ‘점포 절반이 자릿세도 못내요’(서울신문 2008/8/6) 등 자영업인의 채산성 악화를 표현하는 극단적인 용어들이 언론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 중국집 운영주는 “중국집을 시작한 이래 요즘이 제일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예전엔 중국집을 차리면 90퍼센트는 잘 됐다. 그런데 요새는 주변에 폐업하는 집들이 많이 생겨난다”며 그 원인으로 지난해보다 35~40퍼센트가량 오른 식자재 값과 2배가량 오른 LPG가스비를 지목했다. 지난 2월부터 자장면 등 주요 메뉴가격을 500~1,000원씩 올려보기도 했지만 손에 떨어지는 돈은 1년 전보다 100만원 넘게 줄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드러나고 있는 자영업의 실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독 자영업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지, 문제의 장단기적인 원인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90년대 정부의 농정포기 정책으로 농업이 붕괴하고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감행되면서 도시의 자영업 계층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전체 규모로는 선진국의 2배를 넘어섰고, 영세한 도소매 서비스업 종사자의 규모만으로도 전체 취업자의 28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초과잉 초영세 상태로 떨어진 자영업은 2003년 카드대란으로 1차 구조조정 압박을 받아야 했고, 불과 2년 뒤 다시 2차 구조조정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7년 말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구조조정의 압력은 한층 급격한 양상을 띠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도소매 음식업 종사자의 경우 2003년에 한 차례 그리고 2005년 이후 다시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 추세가 더 빨라지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인의 수는 1년 전인 2007년에 비해 무려 7만여 명이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자물가 인상, 국내소비 위축의 가장 직접적 피해계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자영업인의 소득 역시 꾸준히 추락하고 있다. 이는 도시 근로자와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5)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미칠 고용축소 충격

외환위기 이후 고용 문제의 중심에는 주로 비정규직과 관련한 이슈가 놓여있었다. 이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자 난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경기침체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고용 문제는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얽힌 실타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면서도 심각한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고용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폭과 깊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점은 한국경제 전체의 고용창출력 약화의 문제이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인 2002년~2007년에 신규취업자 수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 있다. 경제가 회복기에 있던 이 기간 동안의 평균 신규취업자 수는 약 28~29만 명 정도로 외환위기 이전인 1990년대 초반의 50만 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규모다.

신규취업자 감소의 주된 요인은 경제성장률(GDP성장률) 하락과 제조업의 고용창출력 하락에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비스업의 고용 확대가 이를 보완해 왔으나 최근 3~4년 동안은 이마저도 막혀 버렸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아예 감소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 과대 고용되어 있던 영세 자영업인들의 2차 구조조정이 2004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창출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2008년은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2007년 7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신규취업자의 감소 추세가 2008년 들어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는가 하면 장기화 조짐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월 23만 5,000명이던 신규취업자 수는 3월에는 18만 4,000명으로 줄어들더니 6월 14만 7,000명에 이어 지난 10월에는 급기야 9만 7,000명으로 급락했다. 정부 역시 4분기에도 10만 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의 고용창출력 악화의 결정적 요인은 그동안 비교적 꾸준한 성장을 유지하던 사업자서비스 부문의 고용 악화에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새롭게 취업자 감소에 동참하는 형국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창출력의 악화는 특이하게도 실업자는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채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평균 경제활동가능인구 증가분인 약 43만 명의 26퍼센트(9월 기준)만이 취업자로 흡수되었음에도 실업률은 3.2퍼센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늘어난 경제활동가능인구의 대부분이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곧바로 비경제활동 인구로 편입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실업자의 증가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층 취업준비생의 증가와 함께 남성 장년층의 ‘그냥 쉬었음’(통계청 분류) 항목의 증가가 눈에 띈다. ‘그냥 쉬었음’ 항목 인구는 2007년 현재 130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80퍼센트가 남성이다. 경제사정의 악화에 따라 이런 계층이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의 추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여성 노동력의 추이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여성 취업자들은 남성 취업자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나쁜 일자리’가 소폭 확대된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쁜 일자리’를 주도한 대표적인 계층으로 여성과 노년층 그리고 단시간 일자리 종사자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여성이 전체 고용사정을 대표하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여성의 고용률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비농가 여성 고용률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41.8퍼센트에서 2007년 47.6퍼센트까지 증가했다. 한편 이 기간 동안 비농가 남성 고용률은 불과 1.3퍼센트 포인트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면서 핵심 노동계층과 청년 노동계층의 노동력 확대가 용이하지 않자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여성 노동력을 확대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만약 이런 추론이 사실이라면, 1960, 70년대 산업화 시기 농림어업 부문이 제공했던 ‘싼값의 노동력’을 이제 여성계층이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여성 노동력은 대규모로 동원 가능한 최후의 노동력 풀(pool)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여성노동력의 고용지표들도 남성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남성 고용지표의 악화 속도보다는 아직 덜하지만 2003년 이후 최초로 고용률이 하락하는 추세가 나타난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결과가 영세한 한계기업들의 고용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이는 곧 이들 기업들의 도산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대적인 감원과 고용감소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물경제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2008년 말~ 2009년 초에는 중소기업, 건설업 등을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비상경영, 감산, 인력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금융권과 대기업에서도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이는 정부 역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2009년 경제성장률을 3퍼센트로 가정하며 내년 약 12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는 감세와 재정지출 등을 통한 1퍼센트의 추가 성장으로 20만개까지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1퍼센트 성장에 일자리 7~8만개가 어떻게 새롭게 창출될 수 있는지 근거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1퍼센트 성장으로 평균 6~7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2008년을 기준으로 보면 4만개에도 채 못 미치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주식, 펀드, 부동산 등의 자산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 기조가 꺾이지 않아 이자 부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고용마저 축소돼 소득이 줄어들면서 말 그대로 유례없는 생활고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4. 위기를 구조전환의 기회로 만들기 위한 방안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일로를 걷던 2008년 9월까지만 해도 이명박 정부는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다르다”며 한국경제의 안정성을 주장했다. 그런 자신감 탓인지 정부는 현실화되고 있는 위기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영화 정책(8.11~10. 10),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8.21~), 감세정책(9.1), 그리고 금산분리 완화 정책(10.13)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이 심상치 않은 국면을 예고하고 외신 발 국내 은행의 위기설이 끊이지 않자, 진지한 정책적 고려도 없이 갖가지 금융안정화 대책과 경기진작 대책을 백화점식으로 풀어 놓기 시작했다. 과 이 대표적인 사례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등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는 설익은 정책들의 남발은 오히려 향후 장기화될 불황에 대한 체계적인 대처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세계적 금융위기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금융과 실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국면이다. 여전히 급격한 충격과 변동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임시방편적 응급처방이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구조전환까지 감안한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며 위기의 전개 상황에 맞춰 체계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1) 외부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적 기제 필요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경우 대선 이후 금융 불안정성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있고, 한국 역시 미국과의 3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로 금융경색의 고비를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불안정성의 해소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까지는 금융경색이 기업과 실물경제를 압박했다면 앞으로는 오히려 실물경기 침체와 기업실적의 악화가 금융부실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뇌관들도 아직 제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외국 금융변동성에 대한 어떤 완충기제도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밤사이 뉴욕증시가 폭락하면 바로 다음날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폭증하고 환율이 치솟는 상황이 2008년 9, 10월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는 투기세력이 제한 없이 들어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처럼 시장의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환보유고와 국가재정을 시장에 쏟아 붇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① 외환거래의 안정화

최근 외환시장의 극심한 불안정성은 우리가 지금처럼 외환시장의 완전한 개방과 제약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를 능동적으로 운영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사실 1998년 외국환거래법을 제정해 외환시장을 자유화하고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한 것은 어디까지나 IMF의 요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 내부적인 여건 성숙에 따른 조치는 아니었다. 또한 향후 달러 단일 기축통화체제를 포함한 국제통화에 대한 다양한 체제전환 논의와 국제 외환시스템의 변동이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외환관리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전히 시장기능에 의존하는 방식 보다는 ‘시스템적 기제’를 다시 갖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향후 환율 불안정성이 심화될 경우외환거래법에 규정된 세이프 가드 등을 활용하여 적절한 외환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구조적으로도 외화가변예치제도에 상응하는 시스템을 두어 단기적인 대규모 외환 반출입을 제어하여 급격한 환율변동과 외환경색을 막고, 대신에 중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그만큼 우대하는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최근의 위기를 통해 시장에 의해 자유롭게 환율이 움직이는 자유변동환율제도는 대규모화 되고 투기적 성격이 강한 외국 금융자본에 의해 정부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적정한 수준의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지금의 대처 방식은 외환보유고를 낭비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명확하므로 중단되어야 한다.

②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복원

현재 은행에 대해서는 당장 시급한 원화와 달러화의 유동성 공급에 치중하고 있는데, 이런 대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을 매개로 한 금융과 산업의 장기적 관계금융은 위축되었으며,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 역시 현저히 약해졌다. 대신에 수익추구를 최대 목표로 하여 수수료 수익에 매달렸으며, 시장성 수신을 확대하여 대출규모를 키우는데 주력했다.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 이는 10월 금융위기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자금 위험에 빠진 은행에 대해 정부와 중앙은행은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은행 시스템이 붕괴하면 기업과 가계 전체가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플레이어 가운데 특히 은행은 여타 금융회사들과 분리하여 봐야 한다.

우선 은행들의 수익추구 제일주의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자금지원과 지급 보증을 해주는 조건으로 배당금 지급 금지는 물론, 당분간 대주주 주식 매각 금지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가 공적 자금으로 은행을 도와준 만큼 주주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도 은행 유동성위험 책임을 직원들에게 소득삭감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주주들에게 물어야 한다.

나아가 특히 은행에 대해서는 외국인 지분소유제한을 다시 부활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 재정이나 연기금을 통해서라도 지분을 매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외환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던 말레이시아는 여전히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제한 3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최소한의 자금 중개기능을 살리기 위해 기존 중소기업에 해당되었던 기업의무대출 비율을 설정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 중간 단계로 현재 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은행을 자금 중개기능을 수행하는 선도은행으로 전환하여 외국자본에 넘어간 여타 시중은행들에게 자극을 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은행이 손실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은행직원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파생상품과 관련된 펀드를 판매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시킬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은행들은 펀드판대로 막대한 수수료 이익을 챙겨왔다. 은행들이 2007년 펀드 판매로 올린 수수료 수익은 모두 1조 6,824억 원이었다. 전년대비 106.9퍼센트나 급증했으며, 증권사 수수료 수익보다 큰 것은 물론 은행 전체 당기 순이익의 11.3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펀드 가치 하락으로 보유 자산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동안 은행들은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챙기고 있었던 셈이다. 고객 대면 접촉도 가장 넓고, 신뢰도도 높은 은행이 손실위험이 있는 펀드를 판매하는 것은 막대한 범위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③ 자본시장 탈동조화와 직접 금융으로서의 역할 확보

이제까지 우리는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소유비중이 높으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떤 부정적 결과가 있을 수 있는지 충분히 학습했다. 미국 등 선진자본시장과 완전히 탈동조화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완충장치를 갖춰 외국인들이 쉽게 유동성을 회수할 수 있는 현금 창고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율적인 시장메커니즘을 통해서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 전후로 외국인 지분율을 조절해낼 수 있는 국내 자본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을 다시 부활하는 것도 검토해야 하며, 그것이 어렵다면 외국인이 단기 차익매매를 할 수 없도록 단기차익 매매에 대해 높은 자본 이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아울러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 현금 배당 송금을 일시에 할 수 없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기업에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사실 위기 상황이었던 2008년 1월~10월 동안 112개의 상장사들이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69퍼센트가 늘어났던 수이다.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국면에서 유상증자나 기업공개로 자금을 조달하기는 극히 어려운 실정인데 반대의 경우가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균형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모델을 기초로 한 자본시장 통합법 역시 무기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내년 연말로 예정된 헤지펀드 허용도 유보해야 한다. 여전히 금융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고, 향후 글로벌 자본시장의 재편이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내수기반 확충을 통한 경기침체 대비

현 정부는 ‘규제완화와 감세 → 수출 대기업 투자활성화 → 중소기업 활성화 →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적하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더욱이 현재 수출부진은 수출기업의 내부적 문제 보다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위축에서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에 수출지원에 정부의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다. 효과가 있다손 치더라도 내수 연관효과가 적어 국민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데 효율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대기업 수출지원 대책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대규모 부도위기로 갈 수 있는 중소기업들을 살리고, 자영업이 살아갈 숨통을 터주어야 하며 고용과 소득을 늘려서 내수 구매력을 창출하는데 정부의 재정여력과 정책 수단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①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생존기반 확보

최근 정부는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 대책을 남발하고 있지만, 납품가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중소기업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하청 중소기업의 경영 상태를 호전시킬 수 없다. 즉, 100개의 중소기업 정책보다 ‘납품가 원가 연동제’ 하나가 훨씬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가 원가 연동제가 자율계약 침해라고 밝혔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로서 하청 중소기업의 채산성을 맞출 최선의 방안이다. 납품가 연동제를 공정거래법 안으로 법제화하고, 중소기업청 산하에 중립적인 원가조정 센터를 두어 원가 변동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는 방식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업 거래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에게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독촉하고 있는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할 가장 유력한 대안 역시 중소기업의 납품가 연동제를 받아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가장 급한 중소기업 자금조달 문제를 보다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후선에 서서 은행을 통한 지급보증이나 자금지원을 하고, 시중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대출연장이나 추가 대출을 하기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거의 자금중개기능을 하지 않고 있는 상업은행들에게 정부가 자금을 쏟아 부어봐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게는 자금이 흘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국민·우리·신한 3개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이 신보의 보증서를 갖고 가도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는 일반 시중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사실상 ‘지원 대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분주한 것이 아니라 도산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선별하며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마당이다.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회복은 중장기적 과제로 둔다 하더라도, 당장 비상시국에서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위해 직접적인 자금조달 통로와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주요 상업은행과 대기업 부실을 막기 위한 구제금융 대책이 필요하듯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위한 구제금융 대책 역시 필요한 때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지원 기금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정부재원으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빠른 실사과정을 거쳐 융자를 해주거나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동시에 아직 국책은행으로 남아있는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시중은행을 통한 자금지원이 여의치 않자 정부 스스로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을 활용하여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중소기업을 위한 국책 공공 금융기관이 왜 필요한지는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끝으로 소기업이나 자영업인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카드수수료 인하 역시 촉구나 권장 사항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적용해야만 실효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장기화될 실물경기 침체상황에서 우선 중소기업들의 생존 조건을 확보한 후 중소기업과 내수기반중심의 경제로 구조 전환하는 방향에서 경제위기 탈출구를 찾아 나가는 길이 가장 빨리 침체를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② 고용을 통한 구매력 창출과 내수 진작

미국 경제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장기화될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을 견뎌내면서 안정적으로 경기회복을 도모하자면, 고용과 소득을 늘려 구매력을 창출하여 내수를 견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을 비용으로 치부하며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추구는 결국 부채경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증명된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 토목공사를 해서 내수를 부양하는 것 역시 맞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감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추가로 11조원의 공공지출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가운데 SOC투자 확대 등 건설투자 확대가 4.6조원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수년간 고통스런 경기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설공사 보다 대규모 사회서비스 사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방안은 예상되는 경제난 속에서 저소득층, 육아, 노인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대거 확충해주고 고통을 완화해주는 한편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현재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 영역 확충도 달성할 수 있다. 즉, 대규모 토목공사 대신에 대규모 사회서비스 사업으로 내수 창출과 경기부양,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를 발판으로 경기회복 이후 사회서비스 영역을 현대화시켜 나가는 기회를 열어야 한다.

아울러 큰 폭으로 양산될 가능성이 높은 실업자 군을 위해 실업급여 기간을 늘리고, 청년실업자와 재취업자에 대해서도 정부의 임금 지원금액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 현재의 방식으로 은행과 기업에게 자금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고용에 직접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http://www.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081114120410592&pcd=EA01

자본시장 전면 개방으로 맥 못 추는 국내 금융시장

자본시장 전면 개방으로 맥 못 추는 국내 금융시장
글로벌 금융위기 속의 한국경제 현실과 전망(1)
2008-11-13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글로벌 금융위기 속의 한국경제 현실과 전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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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1월 7일 열린 민주노총 정책토론회 ’한국경제의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 에서 발표했던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복잡한 파생상품(derivatives),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2 등의 부실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의 30~40배에 이르는 차입(Leverage)을 동원하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는 모기지 증권 부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은행 역시 손실을 입으면서 금융위기는 월가 전체로 번졌다.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Paribas) 은행이 미국 모기지 증권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7년 9월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의 파산을 거쳐 2008년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 금융부실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부실 규모를 1조 4,000억 달러로 추산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전 세계 금융부실 규모를 2조 8000억 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이 월가를 탈출해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만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최근에는 장기적인 실물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단지 미국의 주택시장과 모기지 대출시장의 붕괴에 머물지 않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생상품과 레버리지의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나 90년대 일본 부동산 부실과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최근의 금융위기를 교통사고에 빗대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보다는 운전과실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 단속에 소홀한 교통경찰의 책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경영자의 모럴헤저드나 감독기관/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히 금융기업 경영자의 과잉 탐욕이나 감독기관의 감독 소홀, 감독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①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30여 년 동안 영미권을 중심으로 금융 비중의 팽창과 제조업 위축,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금융기법의 혁신(?)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흔히 이를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1980년 세계 명목 GDP는 10.1조 달러, 세계 금융자산은 12조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6년 말 기준으로 GDP는 48.3조 달러, 금융자산은 167조 달러로 급격하게 격차가 벌어졌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 가운데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80년대 10퍼센트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30퍼센트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담당하는 고용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했다. 즉, 제조업에 비해 금융부문이 비대하게 팽창하고 금융 자체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변한 것이 현재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② 1980년대 이후 금융 부흥을 이끌었던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각종 파생상품은 한때 금융혁신의 상징이자 금융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을 분산(Hedge)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와 위험을 확산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워렌 버핏 마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이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이처럼 기초자산으로부터 끝없이 분화되어가는 파생상품은 위험도 측정과 관리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위험에 대한 인식과 그 분산기능, 위험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대 금융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존재하고 이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③ 미국 금융팽창을 선도했던 주요 플레이어들 가운데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사실상 법인체로 규정받지 않는 사조직으로서 금융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투자은행 역시 금융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이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로부터 강제적인 감독이나 규제를 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지주회사와의 상호합의에 근거한 자발적인 감독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조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조화 투자기관(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등을 별도의 자회사로 두고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외거래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 파생상품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는 사적 기업에 불과한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 모기지를 기초로 발행된 각종 파생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해 대량유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신용평가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 있던 헤지펀드는 한때 1조 9,000억 달러 규모, 펀드 수로는 1만 개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기지 증권 부실의 타격으로 2007년 7월 파산하기 시작했다. 파산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사실 1990년에는 전체 규모가 3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0년에는 4,900억 달러로 커졌고 2006년 말이 되자 1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한다. 엄청난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물론 이들 헤지펀드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 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평균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한 금융경색과 자금순환의 단절로까지 번졌던 2008년 9월과 10월에는 약 700여 개의 헤지펀드가 청산되면서 주가 폭락과 펀드 환매사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급팽창한 금융부문에 규제 없이 치명적인 위험이 누적되도록 방조한 것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규제, 주요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은 앞으로 이어질 미국 청문회 등을 통해 가시화될 것이다.

④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도 미국 정부는 1년 가까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긴 채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만 열중했다. 지난 3월 14일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이어 메릴린치와 AIG보험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서둘러 내놓았지만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통과에 이어 은행지분 인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따라서 위기가 표면화 된 뒤에도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정부가 적극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 역시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월가 금융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인플레이션 → 글로벌 외환위기 → 글로벌 경기침체’의 연쇄파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미국식 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과 규제 및 감독의 소홀, 그리고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능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나친 믿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고용과 소득개선에 기초하기 보다는 이른바 신용창출(부채)에 기초한 소비로 지탱했던 미국경제의 구조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중은 갈수록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춰버렸다. ‘소득 향상 → 저축 증가 → 대출 증가 → 투자 확대’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대신에 ‘소득 정체 → 부채(신용)에 의한 소비 → 가수요와 거품 확대’로 이어지는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뒤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수준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상태라 할 수 있는 1퍼센트 성장에 그친 반면, 상위 1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나 성장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1970년 전 국민의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 비중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1/3이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

미국 경제가 잘나가던 90년대조차 미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서민들의 생활형편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가수요 덕에 마치 소비여력과 자산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면서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온 것이다.

그 약탈적인 대출이 바로 한때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퍼센트까지 팽창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이며, 국민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7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경제에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질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하위 20퍼센트의 저소득층이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미국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독차지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소득순위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000만 달러로,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연봉 6만 달러 이하를 받을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서는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문제를 일으킨 초고액 연봉의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채, 부채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는 순간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덧붙여 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매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기반 위축 → 수입에 의한 소비 → 경상수지 적자 → 달러 유출 → 미국 국채발행 → 주요 수출국(경상수지 흑자국)으로부터의 달러 회수’라는 메커니즘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었고, 이는 곧바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나 아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 역시 자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으며, 2008년 11월 15일 개최될 G20 정상회담을 필두로 본격적인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08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미 4,500억 달러의 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은 2009 회계연도를 시작한 첫 달인 2008년 10월에 이미 그 절반에 해당하는 2,3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자국의 거대 금융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금융기업들의 자산상태로 볼 때 이들의 부실과 금융불안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지어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진정될 것 같던 AIG보험의 부실은 갈수록 커져서 2008년 11월 기준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투입한 국민의 세금이 과연 금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금융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를 위한 인수합병의 실탄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GM(제너럴모터스)을 비롯한 제조업체들도 금융기업들처럼 구제금융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거대 가전유통업체인 서킷 시티가 2008년 11월 11일자로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GM 역시 구제금융을 받는다고 해도 파산상태나 다름없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고 파산상태에 몰린 수많은 미국 국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대책이 2008년 11월 현재까지도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부시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의 오바마 당선인이 문제 해결사로 나서게 된 지금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는 미국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가 지도자 한 사람의 교체로 해결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기 때문이다.

2.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무너지는 한국 금융시장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양한 전달경로로 한국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운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 등 한국 금융시장에 준 충격은 특히 위기가 고점에 달했던 9, 10월에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고 여파는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단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탓에 금융시장에서 외부의 금융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7년 한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미국경제와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해야 대미 수출입 의존도가 줄어든 상품무역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특히 금융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히려 재동조화(recoupling) 주장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9, 10월 위기 국면에서는 하루 전의 미국증시 동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증시에 반영되는가 하면, 반대로 아시아 증시가 곧바로 미국 증시에 반영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미국 금융위기가 준 충격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금융시장은 바로 외환시장이었고 이는 곧바로 큰 폭의 환율변동과 외환위기설로 나타났다. 2008년 원화의 달러대비 환율 변동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는데, 원-달러 환율은 달러가치와는 상관없이 폭등세를 이어갔고 미국 금융위기가 증폭될 때 마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수입원자재 가격 등을 급등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초약세가 시작된 2007년 11월부터 이미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달러화 표시 수입물가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치솟은 원유가격이 8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했음에도 환율상승폭이 컸던 9월에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8월과 같은 42.6퍼센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최근 한국은행 자료를 보더라도 환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물가는 2.62퍼센트(공산품의 경우 3.95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원유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할 때 물가의 하락효과는 0.49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결국 원유가격 하락보다 환율상승이 물가에 5배 이상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만 폭등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부품과 소재를 들여와야 하는 수입구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대일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2008년 1~8월 대일 무역역조 규모는 약 230억 달러(누적)에 이른다. 특히 고려할 것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과 소재의 수입단가가 올라가면 이들을 2차 부품으로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가는 높아지지만 대기업 납품가는 이를 따라가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과 달러 부족 현상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기본적으로는 2008년 접어들며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뒤 9월까지 지속되었고 ② 2007년 6월부터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달러화 환전 송금이 이어졌으며 ③ 이 밖에도 조선업 수출액 선물환 매도 물량이나 해외펀드 헤지 물량도 적지 않았고 ④ 일부 역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008년 9, 10월에 접어들면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간, 국내 은행 간, 또 은행과 수출기업들 간의 달러 유통이 막히면서 달러 거래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하게 되었고 급기야 외환위기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0월 초까지 외환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을 취하다가 하루 이상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외환스왑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시 은행권에 달러 지급보증과 직접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요동치고 일부 NDF시장에서의 환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시장은 이를 적절히 제어할 어떤 정책적 기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금융기관들

미국 금융위기에서 씨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주요 진원지는 투자은행들이었다.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상업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과 연체가 높은 저축은행들이 먼저 위험수위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을 몰고 왔던 2008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했고, 외신 발 외환위기도 대부분 은행권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2008년 10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금융 안정화 대책은 증권시장이 아니라 은행권에 맞추어져 있는데, 1,000억 달러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지원, 은행채 직접 매입, 유동성 비율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왔다고 자부해왔고, 최근에는 글로벌 메가뱅크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신한,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렀던 은행권이 어떤 연유로 미국 금융위기 충격에 그토록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을 겪었던 은행들은 이후 ‘금융기관’으로서 자금 중개기능 보다는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규모화 겸업화를 모토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 2조 7,000억 원을 필두로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며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나 통신회사에 견줄만한 수익창출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 배당으로 돌려왔다. 국내 거의 모든 은행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은 상황에서 이 배당의 대부분은 당연히 외국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과 규모화에 대한 압박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과 2006년 과잉 주택담보대출을 낳은 무리한 대출영업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보험과 펀드 판매 수수료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대출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2006년 이후 증시 호황과 펀드상품 판매 호조로 시중 자금이 은행저축에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저축성 수신이 줄어들게 된다. 저축성 은행수신이 전체 금융기관 유동성(Lf)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42.4퍼센트에서 2008년 상반기 33.5퍼센트로 줄어들은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잔액은 14.7퍼센트에서 19.9퍼센트로 증가했다.

이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금수신 금액을 뛰어넘는 대출의 증가, 즉 예대율의 증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금은행의 총예금(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 대비 대출비율은 2008년 8월말 현재 말잔 기준으로 149.2퍼센트(총 예금잔액은 635조 원, 대출잔액은 891조 원)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예금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6월 말 기준 예대율은 103퍼센트로 적정선인 80퍼센트를 훨씬 뛰어넘기는 마찬가지다.

예대율이 높아지던 조건에서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즉, 대출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화 경쟁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저축성 수신이 아닌 시장성 수신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이 총 자본 조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잔 기준으로 21.4퍼센트나 되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조달해 대출을 감행한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은행은 만기가 도래한 CD와 은행채를 갚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달금리가 높아진 은행채의 경우 2008년 상반기 현재 추가로 25조 4,000억 원이 늘어나 발행잔액이 290조 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2008년 9, 10월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자금경색도 극심해졌고 결국 잠재돼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대출의 부실 정도가 높아지면서 추가 대출은 고사하고 대출회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발행된 CD나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그럴수록 이들의 수신금리도 올라갔다.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올라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금리가 7.5퍼센트를 넘어섰고 고정금리부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퍼센트 내린 데 이어 다시 0.75퍼센트 내려 4.25퍼센트까지 인하했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은행들은 국내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을 막론하고 2005년 이후에 단기 대외차입을 급격히 늘려갔고, 그 결과 정부발표로도 2008년 10월 현재 8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역시 2008년 9, 10월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 경색이 심화되자 기존 대외채무의 만기연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추가 해외차입도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기존 수출대기업들 조차 수출대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으면서 은행들은 극심한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은행 발 외환위기설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일시적인 안정세가 오기는 했지만, 그 동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2008년 1월 기준으로 6,618억 달러이던 것이 10월 말 기준으로 2,12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금액을 감안하더라도 줄잡아 300억 달러 이상을 환율 방어에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둘 것은 2008년 11월 접어들면서 원화 유동성 경색은 은행을 넘어 캐피탈, 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 수신 기반을 갖춘 은행과 달리 카드, 캐피탈 등 여신 전문 금융기관들은 은행채보다도 신용이 낮은 카드채와 같은 여전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것이다.

증권사나 보험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 이미 대폭 늘어난 상태이고, 보험사도 채권과 주식 등의 보유자산 가치가 하락하여 지급여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가 카드사의 위기, 캐피탈사의 위기, 증권사와 보험사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온 후과, 폭락하는 주식시장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4조 9,000억 원 순매도, 채권시장에서 역시 4조 1,000억 원 순매도. 이것이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의 충격이 가장 심했던 2008년 10월 외국인투자자들이 취했던 포지션이었다. 이로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간 자금이 총 41조 8,000억 원이었고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이후 8년 만에 30퍼센트 밑으로 주저앉게 된다. 주식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높은 금리를 노리면서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했던 채권마저 주식 매도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매도세로 전환되었다.

그 사이 한때 코스피지수는 1,000선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종합주가 기준으로 정확히 1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80퍼센트나 떨어져 1/5로 폭락한 종목도 무려 20여 개에 달했다.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2년 1월 3일 국민주를 제외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외국인 1인당 3퍼센트, 종목당 10퍼센트 한도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우리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개방 시대를 맞았다. 그 후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종목 당 26퍼센트 미만이던 외국인투자 허용한도가 1997년 12월을 기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이듬해인 1998년 5월 25일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제한은 사라졌다. 2008년은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책 당국자들이 외자 유치를 가장 중요한 정책구호로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보다는 주식, 채권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 지수 300선을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은 시장개방과 함께 포트폴리오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 최악의 상황이 외국 금융자본에게는 헐값에 주식을 매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20퍼센트를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들어 30퍼센트를 넘어섰고, 그 후 2004년까지 외국자본은 가파른 속도로 국내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4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간 1999년~2004년 주가는 대체로 지수 500~800 수준에서 움직였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은 1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24퍼센트포인트나 증가했는데 이때 외국인이 순수하게 투입한 금액은 대략 41조 7,000억 원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주식 매도세가 시작되었다. 외국인이 매도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한 2005년 1월의 주가는 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 외국인은 막대한 차익실현에 성공한다. 외국인이 2005년~2007년에 주식매도로 회수한 돈은 39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1999년~2004년 지분율을 24퍼센트 늘리기 위해 42조 원의 자금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2005~2007년에 그 가운데 단지 10퍼센트의 지분만을 팔아 투자원금에 가까운 40조 원을 회수한 셈이며,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분은 고스란히 순평가 이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내 자본시장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지난 10년의 대차대조표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2007년 6월부터는 단순한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를 넘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금융위기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 된 외국 금융자본이 과거에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인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의 주식을 처분하여 달러로 환전한 뒤 송금하는 행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한국이 두드러졌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 2007년부터 외국인이 대규모 주식매도에 나선 국가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며, 2008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매도가 이어졌지만 역시 한국은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금리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 이익을 위해 채권투자가 잠깐 늘어났지만 2008년 10월 들어서는 이마저도 매도세로 바뀌었다.

이 국면에서 주가는 가파른 폭락을 거듭했으며 그나마 낙폭을 줄인 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덕분이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금융불안이 시작되던 2007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80만 명이 늘어나서 2007년 말 기준 444만 명으로 늘어났다. 직접적인 주식투자 인구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10월 들어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마저 펀드 환매사태에 대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한때 주가가 지수 1,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9퍼센트 전후를 유지하고 있어 일반적인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도 외국인 매도 행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결과 금융위기 국면에서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440만 직접 투자자와 2,000만이 넘는 펀드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종합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은행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수익추구형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고,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금융시장이 구조전환 된 결과, 국내 금융시장의 내성과 안정성이 강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었음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http://www.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081113175512057&pcd=EA01

흔들리는 국내 금융기관들, 한국 금융위기 시작되나?

흔들리는 국내 금융기관들, 한국 금융위기 시작되나?
국민경제 갉아먹으며 글로벌 메가뱅크 꿈꾸던 금융기관들
2008-11-10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글로벌 경제’ 외치던 금융기관의 실체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PDF 아이콘을 눌러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금융기관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안전지대였나?

미국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2008년 상반기만 해도 우리나라 은행과 금융기관의 부실이나 파산을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내 은행들이 미국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수십억 달러 정도의 손실을 우려하는 정도였다. 미국 정부보증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이와 프레디 맥의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던 2008년 7월에도 우리정부가 보유한 이들 채권은 선순위 채권이기 때문에 큰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금융기관이 1997년 외환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에, 재무건전성이 매우 양호해졌기 때문에 미국 발 금융위기의 충격을 적게 받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각종 파생상품 거래와 헤지펀드 등장이라는 금융혁신이 한국에서는 비교적 덜 발전했기 때문에 그나마 충격을 적게 받는 것이라는 논지를 펴기도 했다.

다만 우리의 관심은 온통 환율에 쏠려 있었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 공세가 점점 더 커지면서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것은 물론이며, 경상수지 적자 행진까지 보태져 환율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는 줄 착각했다.

선진국의 대형 투자은행들과 보험회사, 은행이 줄이어 파산하는 와중에서도, 안전지대에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국내 금융기관은 글로벌 메가뱅크, 글로벌 투자은행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신기루가 된 글로벌 메가뱅크의 꿈

정부는 지난 6월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업은행 민영화는 ‘경쟁력 있는 투자은행 (CIB : Corporate & Investment Bank) 육성’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며,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다각화, 대형화 및 해외진출 등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여타 금융회사들에게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는 벤치마크로 기능”하겠다는 화려한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하여 KB금융지주가 되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황영기 회장은 메가뱅크를 위한 금융권 재편에 나서겠다고 호언했다. 2008년 9월 9일 황영기 회장은 KB금융지주, 신한, 우리 금융지주 등 자산규모 200조 원대의 은행들이 대등하게 합병을 추진해서 자산규모 500조 원대의 글로벌 은행을 만들자는 주장을 폈다.

2008년 9월 중순 이후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AIG보험이 한꺼번에 파산에 몰리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이 준비되고 있을 때에도, 한국의 금융정책 당국자들과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글로벌 투자은행을 키우겠다는 희망을 접지 않았다. 모델로 삼았던 메릴린치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자, 자신들은 미국식의 전형적인 투자은행 모델이 아니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결합된 CIB모델을 추구한다고 강변했다.

2008년 상반기부터 잇달아 증권사들을 인수하거나 신규로 설립한 국내 재벌들도 투자은행 설립을 꿈꾸며 그간 제조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금융에 쏟아 부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조차 하지 않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강행하겠다고 2008년 10월 13일 전격 발표했다. 때는 9,10월 금융위기 확산이 거의 정점에 오르던 시기였다.

미국과 전혀 다르지 않은 한국의 금융기관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과 자금조달 단절이라는 상황까지 전개되자 양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우선 2005년부터 해외 단기차입을 급격히 늘렸던 은행들이 달러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세계적 달러 유동성 경색으로 해외은행으로부터 하루짜리 달러차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민간 상업은행 발 외환위기가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무디스와 S&P 등 신용평가 기관들은 10월 들어 일제히 한국의 주요 시중은행들에 대한 등급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 관찰대상으로 내렸다. 급기야 정부가 10월 19일 시중은행에 대한 1,000억 달러 정부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 조달을 발표하고, 10월 말 미국과 300억 달러 통화스왑까지 체결하는 긴박한 상황까지 이어진다.

달러 유동성 경색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원화 유동성 경색마저 겹치면서 은행들은 급격히 대출을 줄이고 자금조달 숨통을 열고자 급히 예금이자율을 높였다. 그러나 이미 시중에서 은행채 등이 소화되지 않는 국면까지 몰리면서 결국 정부와 국민연금 등이 이를 매입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2008년 11월 접어들면서 원화 유동성 경색은 은행을 넘어 캐피탈, 카드사 등 제 2금융권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객 수신 기반을 갖춘 은행과 달리 카드, 캐피탈 등 여신 전문 금융기관들은 은행채보다도 신용이 낮은 카드채와 같은 여전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것이다.

급기야 여신금융협회장과 주요 캐피탈사 사장들은 11월 11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드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은행채를 매입해준 것처럼 카드채를 매입해 수요를 진작시키는 방안을 건의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나 보험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가지고 있는 채권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 이미 대폭 늘어난 상태이고, 보험사도 보유하고 있는 채권과 주식 등의 보유자산가치가 하락하여 지급여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가 카드사의 위기, 캐피탈사의 위기, 증권사와 보험사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수익이 치솟을 때에는 정부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다가, 위기에 몰리니 너도 나도 정부와 중앙은행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아우성쳤던 모습이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과도한 수익추구와 몸집불리기의 결과

그렇다면 미국 모기지 증권 관련 대량 손실이 난 것도 아닌데, 외환위기 이후 자본건전성을 강화하고 관치금융을 없애며 선진 금융시스템을 도입해왔다고 자부했던 국내 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이 어째서 이토록 외부 금융충격에 취약하게 되었을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있던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그동안 ‘금융기관’으로서 고유한 자금중개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금융회사’로 변신하여 철저히 수익을 추구했으며, 이를 위해 규모화와 겸업화를 추구해왔다. 수익 제일주의와 규모화를 위해 무수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거나 외국에서 들여와 판매하는 데 열을 올렸으며, 무리한 자본조달을 동원하여 대출을 강행했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여 우리은행의 경우 2005년 이후 200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23퍼센트에 달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당기순이익도 대부분 조 단위를 돌파하여 국민은행의 2007년 당기 순이익은 2조 7,000억 원에 달했으며, 나머지 은행들도 대부분 조 단위의 순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여 수출해서 올린 수익이 아니다. 오로지 국내 금융영업으로, 그것도 기업대출이 아니라 대부분 소매영업으로 올린 매출들이다. 그래놓고 이제 다음 목표는 글로벌 메가뱅크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이다.

이들 금융회사의 화려한 성장을 받쳐주기 위해 우리 국민이 치른 대가는 가혹했다. 금융회사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발한 신용카드로 한국경제는 2003년 엄청난 카드대란에 휩싸이며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고, 당시에 400만 이상의 신용카드 불량자들이 양산되는 초유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더 이상 수익추구가 어렵게 되자, 이들 금융회사는 회수가 확실하다고 생각한 주택담보대출을 2005년, 2006년에 대거 늘리면서 다시 수익추구에 들어갔다. 가계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고, 건설회사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늘리면서 금융회사들의 대출 규모는 끝없이 확대되었다. 그 결과는 미국 못지않은 부동산 거품이었다.

2003년부터 펀드 판매가 허용되자 금융회사들은 펀드 수수료 수익으로 눈을 돌렸다. 은행을 필두로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펀드 판매 수수료 수익으로 올인했고 그 결과, 미국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던 2007년 펀드 판매는 최고조에 달했다. 펀드 종류가 1만 개에 달했으며 펀드 계좌수는 1,000만 개를 지나 2,000만 개를 넘어섰고 설정 잔액은 수백 조 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펀드가치는 최소 20퍼센트에서 최대 50퍼센트까지 떨어지고 저축해둔 돈, 대출받은 돈으로 펀드에 투자한 수많은 국민들은 다시 좌절과 고통으로 나날을 지새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 금융시스템이 되찾아야 할 가치들

신용카드 대란, 과잉 주택담보대출과 PF대출, 그리고 펀드 판매 남발을 과연 금융기관의 정상적인 영업행위라고 볼 수 있을까. 최근 KIKO 사태에 이어 펀드 불완전 판매 소송이 번지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의 수익추구와 규모화에 대한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자신의 능력 범위, 즉 보유 자금 범위를 뛰어넘어 버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은행의 경우 예금과 적금 같은 저축성 수신을 뛰어넘는 대출이 대거 풀려나갔고, 이런 상황에서 대출 행진을 계속하기 위해 조달 비용이 높은 양도성예금증서(CD)나 은행채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예금 수신 금액을 뛰어 넘는 대출이 폭증하여 CD를 뺀 예금 대비 대출비율(예대율)이 2008년 8월 말잔 기준으로 149.2퍼센트에 이르렀고, CD를 포함해도 적정 수준인 80퍼센트를 초과한 1백퍼센트 이상인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금융위기로 CD와 은행채 금리가 치솟고 그나마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자, 곧바로 자금난에 몰리게 된 것이며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금융으로 대박을 이루겠다던 금융기업들, 금융을 미래 핵심 성장엔진으로 삼겠다던 우리 정부가 추진했던 ‘금융화’의 실체다. 다수 국민을 부채의 나락으로 몰면서 수익 행진과 규모화 행진을 벌인 국내 금융회사들은 미국 금융회사들에 비해 기법만 다소 후진적이었을 뿐 그 행태는 사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이들이 정부에게 손을 벌린다면 이들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스스로 자본확충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정부의 지원만큼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 수익추구에 결정적인 제동이 걸리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동시에 이들의 과잉 질주로 인해 그 동안 우리 금융시스템에서 잃어버렸던 가치들을 되찾아야 한다. 철저히 수익 제일주의 금융회사로 탈바꿈하면서 버렸던 ‘자금중개기관’이라는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투자만 있고 저축은 없었던, 아니 오직 금융투자만 있고 설비투자마저 없게 만들었던 금융환경을 바꿔서 ‘저축’과 ‘설비투자’의 정당한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

오직 ‘글로벌 경제’만 주장하면서 이들이 무시했던 ‘국민경제’의 가치를 살려내야 한다. 그동안 고용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마치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했던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사실은 고용과 소득 대신에 부채로 가수요를 창출해서 일시적인 성장을 추구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부채와 가수요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진정 ‘완전고용’에 의한 성장의 가치를 온전히 되살려야 한다.

바야흐로 세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퇴조기를 뒤로하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시스템 모색을 위해 막 발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면서 동시에 세계 앞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http://www.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081110173528951&pcd=E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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